신앙

(가톨릭 굿뉴스에서 퍼온 글) 너 정말 나보다 더 억울하냐?

From a distance 2015. 12. 19. 15:53

너 정말 나보다 더 억울하냐?
작성자    김형기(hyonggikim)  쪽지 조회수 1510 번  호   1288
작성일   2009-09-15 오전 11:50:21 추천수 5 반대수 0

 

 

내가 좋아하는 연한 회색 정장을 입고, 작고 아름다운 성당안에서 혼자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의 말이 들렸다. “오늘 성당에 갔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눈을 떠보니 침대 위에 누워있었고, 아내가 옆에 앉아 있는데 모든 게 낯설었다. 여기가 어딜까? 아참, 내가 차에 치였었지. 땅바닥에 쓰러지고 앰브란스에 실렸었는데 다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몸을 일으켜 보려고 해도 기운이 너무 없어서 꼼짝할 수 없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두 달쯤 지난 후에 깨어난 어느날 이었다.

아내에게 말을 하려고 해도 입술만  달싹거릴 뿐 소리는 나지 않고… 계속해서 진통제(몰핀?)를 맞은 탓이었는지 머리는  몽롱하고, 시간의 흐름도 느끼지 못하여 아침인가 하면 밤이고, 밤인가 하면 아침이고, 밤에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낮에는 시도 때도 없이 졸리기는 하나 잠은 제대로 이룰 수 없고, 그렇게 여러날이 지났다.

그리고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하여 다리가 하나 절단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성대에 이상이 생겨서 말을 못하고 먹고 마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더 걸렸다. 온몸에 갖가지 호스와 줄이 연결되어 갑갑해서 계속 떼어내려고 하면 간호사들이 눈을 부릅뜨고 야단을 쳤다. 목소리는 전혀 나오질 않고...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나?

그리고도 얼마간, 모든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평양에 다녀 오는가 하면, 천국에도 다녀 오고, 고향 앞산에도 오르고, 고향 바다에서 노닐고…..LA에 사는 둘째 딸이 갑자기 나타나서 반가와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미국인 간호사이고…왜 나는 집에 갈 수 없는 걸까?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인데 물 한 모금 갖다주지 않는 아내가 원망스러웠다. 침대에 누워서 대소변을 보면 더러운 것을 치워주는 간호 보조원들의 눈치가 보여서 변의를 참으려고 애쓰는 것도 견디기가 어려웠다.

기운을 조금 차리고 나서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나서는 억울해서 견딜 수 없었다. 나를 친 아이는 멀쩡하다던데… 내가 그 시간에, 그자리에 없었더라면…당한 사람은 난데, 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나? 멀쩡하다는 그 녀석을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았다. 몸이 붕붕 떠다니는 것 같고, 온몸이 쥐어 짜이는 듯한 통증에 시달릴 때마다, “이대로 죽어버렸으면...”하는 생각뿐이었다.
낮에 문병객들을 대할 때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지만 밤에 혼자 있을 때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괴로운데 때로는 사지를 침대에 묶어놓기라도 하면(생명줄이나 다름 없는 호스나 전선을 잡아 뜯기 때문에) 갑갑해서 견딜 수 없었다. 밤마다 하느니 죽을 궁리 뿐이었다.

아내는 병실에 있을 때에 묵주기도를 바치곤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하느님께 매달리고자 하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억울한 생각, 원망스러운 생각만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인가 침대 발치의 벽에 마련된 조그마한 게시판에 걸린 성모님 상본과 작은 십자고상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내 몰골에 비해 너무 젊고 예쁜 성모님 모습을 보니 반감이 생겨서 아내더러 예쁜 성모님상을 떼어내라고 했더니 그 대신 레지오 마리애의 뗏세라 그림을 걸어놓았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성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 이후로는 누워서 하루종일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다고 하소연도 하고, 억울하다고 푸념도 하고, 가족들을 위해 기도도 하고…그러던 어느날 밤에 예수님의 말씀이 들렸다.

 ”너 정말 나보다 더 억울하냐?”라는 말씀이. 

그날 밤 내내 나와 예수님을 비교하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것을 되풀이 해서 그려보았다. 십자가를 지시고, 여러번 넘어지시고, 베로니카 성녀를 만나시고, 키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돌아가시는 과정을 순서에 상관없이 되풀이해서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그러기를 여러차례, 갑자기 예수님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사고를 당한 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내 처지도 잊은 채 예수님이 가엾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나서 가슴 속에 맺힌 분노의 덩어리가 서서히 녹아버렸다. 아침에 동이 트는 걸 느낄 때마다 행복했고,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나뭇잎들을 보고는 강한 생명력을 느꼈다. 사람들을 볼 때마다 미소를 짓게 되었다. 마음의 치유가 일어나고 몸이 치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요즈음도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가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
“스테파노야, 너 아직도 나보다 더 억울하다고 생각하냐?”
“가엾은 예수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주위에 왜 그리 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심이 깊고 착한 이들이 이런 고통을 받는 걸 보면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 모두 자주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십자가에 달리시게 된 주님을 생각하며 고통을 이겨내실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