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30(Sunday)
오늘 미사 중에는 삶은 관계/인연의 연속이며, 관계는 찰나(刹那)의 고리가 연결되어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을 살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최소화 한다면?
그런 관계는 어떤 상태일까?
그 반대로 세상에 아주 많은 사람과 관계를 갖게 된다면?
어쩌면 수도자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최소화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이 땅에서 평범하게 태어나면 우선 혈연관계 즉, 부모와의 관계, 거슬러 올라가면 조부모, 일가 친척과의 관계, 조상과의 관계가 있고, 태어나 성장하면서는 지연관계가 자연적으로 생기며, 더 나아가 학교에서는 친구관계, 직장에서는 친구관계에 더하여 상하관계도 있게 된다.
그러니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 관계를 무시해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관계를 최소화하며 살아가는 게 최선의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관계 중에서 신(神)과의 관계를 가장 크게 두고, 신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바로 수도자들 이리라.
우리의 삶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다.
그러한 기쁨, 슬픔이 혼자만의 존재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질병을 앓고 있는 등 아주 특별한 경우일 것 같다.
결국 대부분의 경우, 기쁨과 슬픔은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 이리라.
사람과의 관계만을 본다면 그 범위가 커지면 커질수록 기쁨과 슬픔의 크기도 비례하는 것은 아닐지? 그러기에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아주 많은 사람들과 관계가 있는 그들, 소위 공인(公人)들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 수많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기쁨 또는 슬픔도 크게 다를 것이다. 공인들이 이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불행한 일이겠지.
(미사후 집에 오는 길~ 하아얀 눈과 파아란 하늘. 하늘이 구름 한점없이 너무도 푸르다 ^^)
예수님은 사랑을 으뜸으로 가르치셨으니(서로 사랑하라고), 그 사랑은 누군가 대상이 있어야 주거나 받을 수 있는 것. 살아가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슬픔을 주는 것 보다는 훨씬 좋은 것이겠지. 성경 말씀 중에 상대방에게 슬픔을 주지 않고 기쁨을 주도록 가르치는 말씀의 대표적인 부분은 아래와 같은 구절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수많은 성경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내가 기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의 덕분임에 틀림없다. 그러기에 모든 그들에게 감사한다. 특히 나와의 관계 중에 가장 중요한 분은 이 세상 만물을 지배하시는 하느님이시니 언제나 그분께 감사한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데……
특히 10대, 20대 젊은이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삶의 방향을 잘 잡아가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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