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갈림길

From a distance 2010. 12. 18. 17:01

갈림길

(2010.12.18)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데……

별로 생각 없이 그냥 전과 마찬가지로 살아가면 되는데……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글을 씁니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이라는 단체에서 추기경의 궤변이라는 제목으로 2010 12 10일 발표한 성명서는 내가 가톨릭 신자이므로, ()는 사제(목자)가 이끄는 곳으로 가야 하므로, 나 역시 정의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을 바꾸는 것까지 두려워 하고 싶지 않기에 그 성명서는 나에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합니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이라는 명칭은 아직도 불의가 활개치는 이 세상에 이름만으로도 멋집니다. 더구나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실 사제의 단체라니 그 단체에서 정의구현을 위해 자신의 고통을 짊어지고 예수님의 길을 따른다면 모든 천주교 신자에게 무한한 영광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며칠간 많은 정보를 확인해보고 천주교사제라는 단어가 이 단체에 함께 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말씀을 생각하면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행위가 중요한 것일 테니까요. 이런 결론을 내리기 전에 천주교 대전교구의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있는 두 가지 글도 인용해봅니다. 내가 사제를 보고 신앙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며 신앙 생활을 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너무 큰 고민을 줍니다.

무리를 이끌어가는 위치에 있는 이들은 자신의 위치가 참으로 중요한 위치임을 생각하시어 자신을 불태워 무리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하는 현명한 판단과 실행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 주시도록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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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째 인용 : 대전교구/신앙나누기/자유게시판/2010.12.08)

정진석 추기경님, 냉철한 눈을 기대합니다

(중략)

실망을 주고 있는 서울대교구

천주교는 정의구현사제단과 교구의 정의평화위원회(환경소위원회) 중심으로 활발하게 저지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 한국교회에 정의구현사제단이 존재하고 교구마다 정의평화위원회라는 공식 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나는 하느님의 은총이요 안배로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모든 정황을 놓고 가장 교구인 서울대교구는 여러 가지로 실망을 준다. 서울대교구는 시대의 좌표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같다. 지난달 29 오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봉헌된 '생명평화미사' 전국 각지에서 오신 100명이 넘는 사제들 서울대교구 사제들은 비율적으로 소수였다고 한다
.

그것이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어떤 시각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리라는 심증을 숨길 없다. 교구장이 그런 태도를 유지한다면 천주교의 속성상 융통성이나 탄력성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추기경의 어떤 시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는 사항이다
.

추기경의 노회한 시각은 천주교가 마땅히 담당해야 시대적 책무를 둔화시키는 쪽으로도 작용하고,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는 같다. 그것의 하나가 지난 12 2 본방송이 나간 평화방송 TV 'PBC 특강' 정홍규 신부(대구대교구, 영천 '산자연학교' 교장) '평화 생태 이야기' 강연의 부분 삭제 방영이다.

(중략)

비록 시골구석의 말단 평신도에 불과하지만, '실천하는 신앙', '행동하는 양심' 신앙생활의 최고 덕목으로 여긴다. 내가 골방에서 백날 기도해봤자 시대의 좌표를 읽지 못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주님을 편히 믿는 것이긴 해도 결코 제대로 따르는 것은 아닐 터이다.

(중략)

덧붙이는 - 글은 천주교계 인터넷 매체인 <가톨릭뉴스/지금여기>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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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째 인용 : 대전교구/신앙나누기/자유게시판/2010.12.14)

주교단이 4대강 사업이 자연을 파괴하고 난개발의 위험을 보인다고 했지 반대한다는 소리는 안했다. 위험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개발해라는 적극적인 의미로 있다...창세기에 보면 하느님께서 사람이 자연을 이용하고 다스리라고 했다...우리 후손들이 지구자원을 활용해 나가야 하니까 지구환경을 보존하면서 활용해 나가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4대강 개발도 발전을 위한 개발이라면 무난하다그리고 붙여서 이러한 것들은 전문가의 영역이지 종교의 영역은 아니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십니다.

 천주교 신자 여러분아니 국민 여러분! 말씀이 그토록 궤변입니까?

소위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라는 일부 사제들의 단체가 정진석 추기경님의 말씀에 발끈해서 내놓은 반박성명의 제목이 <추기경의 궤변>이었습니다. 제목부터가 적대적이고 아집스럽고 독기가 서려 있습니다. 성명서를 읽어 가던

  “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부를 편드시는 혹은 그래야만 하는 남모르는 고충이라도 있는 것인지 여쭙고 싶다


라고  비아냥거리는 바로 대목에서 잡스러운 세속의 인간들이 벌리는 행태를 그대로 보는 같았습니다결국 이말은  ‘당신이 무슨 약점을 잡혔기에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말을 하는게 아니냐라는 것인데 세속의 때가 묻은 사람도 하기 힘든 말이 성직자들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것도 같이 몸담고 있는 교회의 큰어른에게 말입니다

(중략)

 추기경님의 말씀 어디에도 특정인이나 특정사안을 비난하는 대목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직자들이 떼거리로 다수의 힘을 과시하듯 한분을 그렇게 공격 합니까
떼거리로 한사람을 공격해대는 것은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짓이지 성직자들의 모습은 아닙니다. 성직자로서는 있을 없는 비열한 짓입니다. 원래 정의, 양심, 창의 이런 것들은 집단을 만들어서 떼거리로 하는 가치개념이 아니고 개인이 갖는 숭고한 가치체계입니다. ‘정의 집단적으로 떠벌려 이루려고 이미 그것은 아집에 빠지고 맙니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참여하는 사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세속의 압력단체나 이익단체와 다를 없는 조직으로 변질 밖에 없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에 속하지 않고 묵묵히 사제의 길을 걷는 많은 신부님들은 역설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사제가 되고 맙니다. 왜냐 '정의구현'이라는 수사를 그분들처럼 애써 붙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위에 인용한 글을 쓴 두 분은 나와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유명하신 분일 수도 있습니다. 같은 가톨릭 신자이지만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참으로 큽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하시며 타인에 대해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말씀하셨는데 너무 쉽게 타인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이 많음은 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사제로서……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실수를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못은 인정하고, 뉘우치고, 용서받을 수 있음을 믿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자신의 완벽만을 주장하는 우리(처음엔 다른 목적어였는데 수정했습니다)는 아닌지 반성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마침 어느 신부님의 강론 중 죄 없는 사람이 돌로 쳐라는 글이 있어 옮겨봅니다.

 

사순 제5 주일 요한 8,1-11 (죄 없는 사람이 돌로 쳐라

강영구 신부

(중략)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대답 대신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아무도 감히 그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지지 못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나이가 든 사람들부터 한 사람씩 차례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하기는 나이 한 살이라도 더 먹었으면 죄가 더 많은 법이지요.

  스스로 착하고 의롭게 산다는 사람들, 하느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킨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율법학자요 바리사이파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교만함 때문에 눈먼 사람들이었고, 자기의 모습을 바르게 바라보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어리석음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거기다가 그들은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바르게 바라보지 못하고, 눈이 멀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곧 멸망의 시작입니다.

 

하느님 앞에 성인과 죄인의 차이는 없습니다. 성인이라 자부하는 사람도 한순간에 악마와 같이 변할 수 있고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인이라도 회개하면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종이 한 장 차이도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 의인이라 생각하고, 이웃과 형제들을 단죄하고 그 허물을 탓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중략)

내가 심판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