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용서 -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

From a distance 2008. 12. 29. 10:56

어젯 밤에는 늦게 우연히 SBS TV에서 "용서-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오늘 아침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지난해 말에도 방영된것 같은데, 5년 전쯤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 유영철에 대한 피해자 분들의 용서와 복수를 다룬 내용이었다. TV를 보는 중 너무 힘든 상황이 많아 그 때마다 눈물을 감출수 없었다.  결혼 전 부터 나는 가정을 갖게되면 가훈을 "용서, 사랑"으로 하겠다며 평소에 용서라는 말을 자주 쓰곤 했는데 이 다큐를 보고서는 내가 용서라는 단어를 너무 가볍게 쓴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살인자를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람들......방송이 끝나고 "내일은 특별히 그들을 위해 새벽미사에 참석해 감히 주님께서 그들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그리고 살인 당한 영혼들을 거두어 주십사 간청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오늘 새벽미사를 드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왜 하느님께서는 저들이 그렇게 무참히 살해되도록 내버려 두셨는지, 왜 한 인간이 그토록 무서운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도록 내버려 두셨는지 진정 하느님은 방관자이신가 하고 원망이 들기도한다.  마침 인텃넷 검색중 영화화된 내용에 대해 평한 글이 있어 그중에 일부를 퍼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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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란 참으로 위대한 행위이자 삶에 있어서의 중요한 화두입니다. 사랑이나 자비와도 통하는 것이지요. 용서란 그 대상이 자신이든 남이든, 결국 자신을 살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의 용서는 '한'과도 이어져 있습니다.

가족애가 남다른 한국이라 더더욱, 가족을 사람의 손에 잃은 사람들 - 세 가족 - 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흡인력 강했지만, 전체적으로 보기에는 기대에 비해 떨어지는 짜임새와 깊이, 통찰력이었습니다. SBS한테 깊이를 바라는게 아니었던 건가(...). 솔직히 소재와 사연 자체가 워낙 강렬해서 그렇지, 그거 빼면 정말 부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톨릭쪽에서 후원해줘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인데 솔직히 아쉽습니다.

그리고 삼형제를 잃은 아버지분 말씀은 솔직히 알아듣기가 힘든데 자막이라도 넣어줬으면 했습니다. 영어 번역에서는 자비(compassion)를 잘못 알아듣고 '열정'(passion)이라고 번역해놓은 곳이 있더군요.

고정원씨와 안재삼씨의 대비되는 두 모습이 가장 깊이 다가옵니다. 유영철과 관계가 없는 나머지 한 가족은 사실 제작측에서 잘못한, 혹은 잘못 처리(?)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의 흐름으로 묶으려면 제대로 묶던가...

영화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목사라도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는 부분입니다. 외국인 피해여성분이 '아니요! 내가 아니라 (죽은) 내 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라면서 화를 내고 나왔다는 이야기가 참 인상깊었습니다. 또 '부모가 죽으면 언덕 위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라고 한 미국 분의 말을 들으며 정말 세계는 하나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어쩌면 표현까지도 그렇게 가슴 절절하게, 똑같이 할 수 있을까요.

저는 - 물론 저는 출연자 분들같은 경험은 없습니다 - 기본적으로 모두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고정원씨에게서는 용서 자체도 얼마나 고행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 될 수 있는지 보는 것이 인상깊었고... 두 따님분들은 아버지의 아픔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미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마 참혹한 기억, 충격이 아버지보다 덜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안재삼씨는 참 개인적으로 가장 연민이 일어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 내에서 가장 울컥한 부분도 경찰차 앞에서 분노를 터뜨리는 안재삼 씨의 모습이었고... 분노는 안재삼씨를 살게 해 주지는 않지만 안재삼씨가 믿는 모든 것을 지탱해준다고나 할까... 그냥 용서라는 말 자체가 고정원씨의 용서와는 굉장히 다른 의미로 다가올거라고 생각합니다. 용서한다면서 그냥 없었던 일처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 스스로를 - 용납하고 용서할 수 없는, 강박관념이랄까 쫓긴달까... 그래서 남의 의견이 채 나오기도 전에 자기 주장을 굳히느라 급급합니다. 배우들이 아니라 이렇게 함부로 이야기해도 되는건가 싶지만, 보면서 안타까웠습니다.

미국인들의 '희망의 여행' 단체도 인상깊었습니다. 그렇게 되는 문화도 그렇고...

자연이라면 어떨까 하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응징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유영철 같은 존재 역시 순수한 자연에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역할이나 존재의의, 비인간과의 차별성 등을 간간히 생각해보는데, 항상 '인간은 스스로를 공진화시켜서 세상에 제대로 된 질서를 가져와야 한다'는 결론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다른 '종(種)'과도 교감하고 연결하며 어울릴 수 있으니까요. (다른 종끼리의 조화도 가능하게 하죠.)

제작 자체는 상당히 엉성하였지만, 보면서 여러가지를 느끼고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관람태도나 상영전 광고들에 대한 반응들을 보면, 극장에 오신 분들 중 굉장히 많은 수가 평소 극장을 찾지 않으시는 분들 같더군요.

평점: 소재는 A+급, 작품은 B- 혹은 C급. 총합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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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SBS 스페이셜 시청자 의견란에서 퍼온 또 다른 분의 글이다.  퍼온 글의 주소는 : http://wizard2.sbs.co.kr/resource/template/contents/tpl_iframetype.jsp?vProgId=1000126&vVodId=V0000311936&vMenuId=1002037&no=6031

 

자신의 인생이 아무리 불운했더라도 자신의 인생과 무관한 21명을 무참히 살해한 것으로도 복수되지 않는 불운한 삶이란 대체 어떤 것입니까? 지구 전체 인류의 목숨과 같은 가치를 가진 단 한사람의 목숨이 과연, 어떤 사람의 복수심에 의해 살해될 수 있는 것입니까?

저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거기다 유영철은 화장실 수건 걸이에 걸어놓은 시체의 신체를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흔히 싸이코패스라고 하는 아무 동기도 없고 죄의식도 못 느끼는 자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그를 그 무엇으로 심판 할 수 있을까요? 세븐데이즈 처럼 국가의 사형조차도 그가 한 짓을 생각하면 너무도 편히 죽는 방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를 용서한 고정원씨. 다시 한번 그의 마음이 가늠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너무 괴로워 가슴을 치며 울다가 결국 촬영 스탭이었던 듯한 분을 붙잡고 우는 장면은 너무도 가슴아팠습니다. 마지막 즈음 사형제 폐지 선포식 행사에서 고정원씨는 유영철의 아버지를 만나는데 그 장면 또한 저는 정말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이라 영원히 만나지 말아야 할 두 행성이 충돌한 것만큼이나 충격적이었는데 고정원씨는 먼저 힘들지 않으시냐고 위로의 말을 건네죠.. 아마 그 즈음부터 마지막 장면 고정원씨가 만나주지 않는 유영철을 만나기 위해 눈쌓인 교도소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뒷모습까지 저는 계속 울었던 것 같습니다.